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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위천(以民爲天)과 실사구시(實事求是) 로 이룩해낸 민족의 얼
(북한소설 ‘소설 훈민정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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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훈민정음’이라는 소설을 접했을 때 느낌은 흥분이었다.
바닷길, 하늘길이 열리고 올해에는 땅 길까지 열리어 남북왕래가 잦아지고 있는 지금 시대에 한 민족인 북한을 더욱 깊게 알아가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에 접하게 된 ‘훈민정음’은 많은 교훈과 감동, 새로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겨레인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현행법으로 존재하고 있는 조건에서 북한의 문학소설을 시내의 큰 서점에 버젓이 비치되어 있어 판매되고 심지어 ‘통일독서대회’ 지정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분단의 시대를 살아오는 나로서는 적잖게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북한 도서라는 것 자체의 호기심으로 첫 장을 넘기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감동과 궁금증이 살아나면서 단번에 책 한권 읽기를 단번에 마무리 지었다.


소설 ‘훈민정음’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즉위하던 1440년대 초반부터 양력으로 1444년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우리말은 있었으되 이를 표기할 수 있는 글이 없음으로 인해 양반으로 지칭되는 사대부들만이 한자로써 글이 통용되던 시대이다. 이에 세종대왕은 우리의 글을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에게 큰 기대를 품고 우리글을 만드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소설의 첫 장은 집현전의 젊은 학자이며 소설의 주인공인 성삼문이 우리글 만들기를 연구하며 문창살을 기초로 안을 내놓았다가 집현전의 여러 학자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자 의기소침하여 있을 때 세종대왕이 수원에 있는 측우기를 보고 오라는 명을 받들어 수원으로 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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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소설에서는 우리글 창시의 중요성을 주인공 성삼문의 삶과 연계 지어 그 절박함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우선 성삼문이 수원에 설치된 측우기를 보고 올라오는 길에 머물렀던 주막의 문창살 창호지가 책으로 발라져 있던 일화이다. 그 책은 다름아닌 백성들의 농사를 돕기 위해 나라에서 만들었다는 '농사직설'이었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 책을 발간하여 널리 농사짓는 법을 알리는 것은 좋았지만 정작 농사를 짓는 평 백성들은 한자를 모르다보니 나라에서 농사중시 정책으로 발간된 책자조차 문창호지로 대신 되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주인공 성삼문이 수원에서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도총관으로 재임하면서 외세인 여진족 소탕의 어명을 받들고 출전하였던 성삼문의 아버지가 부하들의 작전하달 과정에서 순수 우리말의 집결지명을 잘못 표기, 전달함으로써 결국 여진족 소탕에 실패하게 되고 아버지는 나라의 문초를 겪게 되었다. 이 사건이 있으면서 성삼문은 우리글 창시의 절박함을 재삼 깨닫게 된다. 이 시점은 성삼문 스스로도 우리글 창시에 힘이 부치면서 이두문자로 대처하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던지라 아버님의 사건은 성삼문으로써 우리글 창시의 절박함을 다시 한 번 폐부로 절감하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성삼문의 하인으로 있는 복돌이로부터 복돌이가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가 글을 몰라 양반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그 딸 쌍가매가 양반집 노비로 팔려가게 된 사건을 들으면서 우리글 창시 사업의 사명감을 더욱 높게 각인하게 된다.


소설은 또한 백성을 위한 글은 백성들의 삶과 역사에서 실마리를 얻는 과정. 즉 이민위천과 실사구시를 실행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성삼문이 수원에서 측우기를 보고 느꼈던 바가 그 하나라 하겠다.
이 소설에서 측우기는 단순히 과학 발전의 관찰 대상이 아닌 향후 훈민정음 창시의 사명과 배경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소제이다. 훈민정음 창시 또한 말을 글로써 표현할 길이 없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함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측우기 발명의 사명과 배경이 다르지 않다하겠다.
자연재해의 굴곡이 심한 수원에서 이미 백성들은 측우기 발명이전부터 빗물의 양을 통해 한해 농사 주기를 가늠하여 실용하고 있었다. 측우기란 백성들이 자신의 생활을 개척하는 속에서 이미 그 답을 가지고 있었으니, 농사 한 번 지어보지 않은 양반들보다 훨씬 더 지혜로우며 또한 생활 속에서 쓸모를 찾고 실용하는 실사구시가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단순한 도구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생활하는 백성들의 지혜를 존중하고 본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수 천 년 역사를 살아오면서 과연 백성들은 자기 말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없었겠는가에 주목하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을 찾아 그 뿌리를 찾아가는 것이 두 번째 사례이다.
주인공 성삼문은 관서지방에서 우리글의 뿌리를 찾기 위해 산과 강을 뒤지면서 갖은 고생을 다 하지만 결국 어떤 단서도 얻지 못한 채 병까지 걸리게 된다. 하지만 그 해답은 산과 바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 속에 있었다.
함께 지냈던 기생 초향이가 보고 읊조렸던 시조의 문자가 다름아닌 백성들로부터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글자였던 것이다. 이 글자로부터 영감을 얻어 양반, 평민의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어 기생의 아버지에게 찾아가 결정적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글자의 조합을 체계적으로, 형태는 더욱 보기 좋게 잡아나가면서 훈민정음의 골자와 형태가 잡히는 과정에서 양반집 부인인 성삼문의 부인에게 그 집의 하인들을 상대로 글을 배우게 하면서 우리글의 생활력의 확신을 얻게 된다. 우리말과 글이 백성들을 이롭게 함에서 출발하는 만큼 양반이 아닌 하인, 평민들을 대상으로 먼저 우리글 배우기를 시험하였다는 것 또한 이민위천, 실사구시의 정신을 보여주는 귀감이라 하겠다.


끝으로 이 소설에서는 우리글 창시의 새것을 방해하는 사대부들과의 논쟁을 묘사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우수성, 독창성을 실증하여 준다.
집현전 학자 중에는 집현전의 이인자의 위치에 있는 최만리라는 자가 우리글을 독창적으로 창시하기보다는 지금껏 양반들 위주로 써왔던 한자를 그대로 유지하되 이두문자로 읽는 것을 기록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두문자 연구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글 창시에도 커다란 반감을 지니면서 늘 난관을 조성시켰다. 이에 성삼문은 집현전이 모인 어느 자리에서 또다시 최만리가 우리글 창시의 반대의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옛말을 인용하여 사대주의 근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 옛말의 골자는 ‘천축국에서 연못에 빠져 죽었던 공주의 불상사를 막기 위해 연못 주변에 파수군을 세웠는데 350년이 지나 연못은 흔적 없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수군을 세워 지키게 하였는데, 그 누구도 왜 그곳에 불필요한 파수군을 세우는지조차 모른 채 늘 그렇게 해 왔으니 으레 파수군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즉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옛날의 낡은 방식을 그대로 답습함에 대한 비판과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에 대한 사대굴종의식을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대주의에 물젖은 자들은 우리글 창시사업을 음해모략하면서 임금께 상소까지 올리며 방해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짓고 있다.


소설 ‘훈민정음’을 읽으면서 한글의 창제 과정이 이민위천(以民爲天)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의 이민위천(以民爲天)은 나랏일이 잘 되고 못 되고는 결국 나라를 구성하는 민초인 백성들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가 기준이 되어야한다. 이 소설에서는 훈민정음을 창시하는 배경과 과정에서 이민위천의 뜻을 굽히지 않았기에 사대부들만의 소유물이었던 한자를 변형하여 이두문자로 만들고자하였던 방해에도 무릅쓰고 백성들이 쉽게 익힐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 깃들어 있었기에 훈민정음의 독창성을 살려낼 수 있었다. 문창살과 우리말의 입, 목, 입술 등의 모양새, 하늘과 땅, 사람의 귀중함, 음양의 이치로써 훈민정음을 창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흔히 무언가의 소중함을 비유할 때 ‘공기’를 사례로 들곤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민족의 말은 있으되 글이 없었더라면 이는 반쪽짜리 언어일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는 실로 많은 민족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단일민족도 있으며 혼혈민족도 있다. 그렇다보니 현 시대에는 민족 구분의 근거를 언어로 들기도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한 강토에서 살아오면서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1444년 훈민정음이라는 우리글이 창시, 반포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단일성은 다른 민족에 비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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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동에 전시된 한글 문양의 옷
얼마 전에 인사동 길을 걷다가 한글 문양으로 예쁘게 옷을 만든 것을 보고 반하여 사진을 몇 장 찍어 왔다.
그 때는 한글의 소중함이나 우수성보다는 한글의 문양으로 옷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에 사진을 찍었지만, 소설을 읽으니 새삼 그 의미가 다르게 느껴진다.
거리에서 흔히 영어 문양의 옷과 가방, 온 천지에 외국어로 디자인한 것들 뿐이다.
하지만 한글에 대한 소중함과 자부심이나 한글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매년 무심결에 한글날을 지나쳐왔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말과 글이 있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과 독창성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을 보면서 지금은 분단된 우리 겨레이지만 함께 살아왔던 반만년 유구한 역사에 비하면 갈라져 살아온 날은 잠시이기에 우리 겨레의 통일은 언제고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와 남과 북 온 겨레가 공통의 말과 글을 사용하고 있기에 통일의 길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우리말을 표기할 훈민정음이 없었더라면 그 옛날 서당에서 무릎 꿇고‘하늘 천, 따 지...’로 시작되는 수천, 수만자의 한자를 외우며 다리가 저릴 것을 생각하니 불과 (반포 당시)28자로 우리말의 모든 것을 표기할 수 있다는 것에 우리 조상들님들의 슬기와 지혜에 감사를 드린다. 물론 이를 나라의 정책으로 입안하여 훈민정음 창시에 심혈을 기울였던 집현전 학자들과 세종대왕에게도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덧붙여 소설 ‘훈민정음’이 안겨준 감흥과 교훈으로 더욱 우리말과 글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최근 인터넷 상의 우리글의 그릇된 변형글자와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통용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무분별하게 우리글을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소설 ‘훈민정음’을 권장하면서 다시금 우리글의 소중함을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7/10/09 02:04 2007/10/09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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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08/06/03 10:19 | PERMALINK | EDIT/DEL |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변신너구리| 2008/06/05 13:52 | PERMALINK | EDIT/DEL | REPLY
아, 안녕하세요.
저 사진이 교과서에 실릴만한 것인지 모르겠네요. 필요하시면 쓰셔도 좋습니다.
말씀하신 교과서 이외에 다른 부분에 사용하거나 다른 분들에게 주지는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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